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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차원이 존재합니다.
각각의 차원을 관리하는 차원 담당자도, 어떤 차원 안에서 상식이 되는 세계관도,
물리적으로 코앞에 있는 차원이라한들 연관되지 않고 천차만별인 법입니다.

우리는 차원관리지부의 지도 관리에 의거, 제303번 차원으로 명명받았습니다.
(차원 번호의 정확한 기준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해당 차원의 지성체가 다중 차원을 간파한 시점이 기준일까요?) 

담당자께서 소유하신 차원이 어떤 환경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303번 차원은 현재 인간의 역할을 라보라도가 완전히 대체한 세계입니다.
그뿐이겠어요, 연구소 바깥으로 너무 멀리 떨어지면 모든 세균이 분해되어
평범한 생명체는 형체를 유지할 수 없는 아포칼립스의 환경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멸균 아포칼립스라고 칭하는 이 현상이 있기 전의 이 차원은… 글쎄요.
저는 제0번 차원, 특히 '지구'라고 불리는 행성의 환경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에는 인간 이외의 지성체가 없었고,  있었다 한들 고대 문헌으로 언급된 것이 전부입니다.

다만 생명 연구에 활발하여, 중국 왕실에서부터 유래된 인조 생명체들이
도처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 인조 생명체의 생산로가 끊기고, 남은 개체를 보존하기 위한 움직임이
지금 우리의 터전이자 이 차원의 마지막 연구소인 '중앙 연구소'의 시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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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생체 공학 물질 목적 센트럴 센터.

앞에서 설명드렸던 인조 생명체인 호수戶獸를 보존하고,
그  체내를 구성할 영구성 생체 물질을 개발하던 목적의 대규모 연구소였죠.

호수는 혈액과 같이 타고 흐르던 생명 연료가 있었지만,
노화되어 혈관이 터지자 몸에 관을 연결하여 기괴하게 연명해야 했던 종족입니다.
그래도 호수는 제303번 차원 유일의 인공 생명체였기 때문에,
인공 생명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수많은 연구원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 차원 전역에 멸균 아포칼립스가 발현하고 말았고,
세계 각지에서 이곳으로 모인 연구원들의 목표는 하나로 좁혀졌습니다.

이 재난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간.
시간에 굴복하지 않는 불로의 생명, 포기하지 않는 끈기.
영구 기관의 지성체의 탄생.
 
그리고 그것은 인공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 모인 그들의 특성상,
인간의 신체 개조가 아니라 새로운 지성 생명체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라보라도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다음 세대를 도모하고 사라진 인간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무구한 애정과 탐구심으로.

그리하여 중앙 연구소는 현재,
삼천여 명의 라보라도 연구원이 각자의 연구 분야로 활동하는
이 차원에 유일하게 남은 공동체이자, 마을이고, 국가가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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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보라도는 이런 환경에서도 지성체의 탐구가 멈추지 않도록,
마지막 남은 인류들이 탄생시킨 인조 생명체였습니다.
선임 연구원, 즉 인간 연구원들은 인공 생명을 애착했던 이들답게
라보라도들에게도 동지애와 동시에 가족과 같은 사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인간 연구원들과 동등한 신분으로 대해졌습니다.
연구원간의 위계는 있었죠. 간부직과 보조직과 같은 차이는 있었으니까요.

초기 형태의 라보라도가 태어난 것은 2080년,
제303번 차원에서 마지막 인간이 죽은 것은 2314년.
이 사이에 태어나지 않은 라보라도들은 인간을 직접적으로 기억하진 못합니다.
현 시점이 2525년(여러분의 시간에서 500년을 더한 시간)이므로,
가장 나이가 많이 든 연구원이 445세 정도일까요.
라보라도에게 있어서도 존경스러운 일이죠. 뭐, 노인공경보단 경력의 리스펙에 가깝겠습니다만.
라보라도의 입장에서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셈입니다.

인간을 싫어하는 연구원이 있었냐고요?
뭐, 패륜하는 자식이 아예 없었다고는 못합니다.
타고났던 호기심을, 그래서 연구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 인간을,
증오하고 원망하는 이들은 어느 세대에든 있었습니다.
가벼운 슬럼프예요. 큰일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시 연구로 돌아갔어요.
어째서 우리는 연구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주제로 말이죠.


우리 라보라도들이 거주하고 있는 제303번 차원은 현재,
어떠한 자연환경도 의미가 없는 순수 멸균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이 연구소에 갇혀 있어요. 많게는 수백 년 동안 말이죠.
아무리 연구를 좋아하고, 연구를 위해 태어난 족속들이라 한들,
솔직하게…… 질릴 만하죠. 모든 것에.

선임 연구원과 라보라도들 사이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인간들은 넘지 못할지라도, 라보라도들이라면 넘을 수 있을지 모르는―
차원 너머의 세계로 떠나고 싶다는 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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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세기, 그러니까 2412년의 일입니다.

우리는 제303번 차원에 귀속되어 있던 존재의 족쇄를 끊고,
다른 차원에 머무르거나 귀속될 수 있는 형태의 차원 이동 포탈을 개발했습니다.
…속된 말로 택갈이라고 하나요? 대충 그런 매커니즘입니다. 네.
중국산인 상품을 이태리산으로 만드는 마법. 우리는 그런 식으로 차원을 이동합니다.
여러분의 차원의 소유였던 것처럼 출신을 바꾸는 것이지요.

그렇게 잠시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아예 그 차원에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차원 담당자들의 말로는 오너권 양도라고 하더군요. 어려운 어휘입니다.

그리하여 라보라도들도 제303번 차원을 벗어나 다른 차원의 근무처로 취직이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너무 많은 인재들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시로 지원자를 선출하고 있습니다.
선정된 개체는 차원 담당자 여러분께 간단한 정보가 공개되며,
채용 희망 시 차원 이동 포탈을 이용하여 여러분께 직접 연구원을 보내드리는 형태의
범차원 이동 채용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인재를 찾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지원자들 역시, 여러분의 차원으로 떠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